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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딸에 대하여 솔찍후기

영화 딸에 대하여 솔찍후기

<딸에 대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모든 인간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음 또한 내포한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우린 필연적으로 하나의 관계를 타고난다. 바로 부모-자녀 관계다. 세상 수많은 부모와 자녀가 있는 만큼 이 관계는 하나로 특정 지을 수 없고, 그래서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에서 이 관계를 들춰보곤 한다. 9월 4일 개봉하는 <딸에 대하여="">도 그중 하나인데, 부모-자녀 관계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내비친다.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옮긴 <딸에 대하여="">는 이미랑 감독의 심도 깊은 재해석과 주연 배우들의 열연을 프리즘 삼아 관객에게 관계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 후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난 <딸에 대하여="">는 9월 4일 개봉을 앞두고 언론배급시사회를 열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영화를 연출한 이미랑 감독, 주연배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이 현장에 참석해 <딸에 대하여="">를 각자의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같은 날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영화 시사회가 있던 것을 두고 "임영웅님 행사도 있는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임세미의 인사말로 유쾌하게 시작한 기자간담회 현장과 영화의 단상을 적는다.

<딸에 대하여=""> 포스터


엄마와 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딸에 대하여="">

요양병원의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오민애)와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는 딸 그린(임세미). 어느 날 그린은 여러 사정으로 집을 빼게 됐다며 동거 중이던 동성연인 레인(하윤경)과 함께 엄마의 집에 살게 된다. 딸의 동성연인과의 갑작스러운 동거, 거기에 자신이 보살피던 제희(허진)의 치매 증상이 불거지면서 엄마는 혼란스럽다.

<딸에 대하여="">는 제목처럼 엄마와 딸의 관계로 영화를 연다. 너무나도 귀한 딸이지만, 아직 철부지 같은 딸을 보며 엄마는 불안하다. 동성연인과의 사랑을 언젠가 후회할까, 그래서 훗날 가족이 없는 쓸쓸한 삶을 보낼까 봐. 반면 딸은 엄마가 과거 자신에게 했던 말들과 다른 모습에 실망하곤 한다. "부당한 걸 참지 마라"던 엄마가 자신의 선택에 자꾸만 잔소리를 하니까.

그렇지만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관계 너머에 있는, 엄마가 보는 세상을 그린다. 평생 해외 결손아동을 도운 '어르신' 제희가 점점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엄마는 그를 더욱 살뜰히 챙긴다. 그렇다, 엄마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딸'이니까. 모든 엄마는 결국 딸이었으니까. 영화는 하나뿐인 딸과는 점점 거리가 생기면서 누구도 이해 못 할 정도로 딸 이상의 효성을 보이는 엄마의 행적을 담으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넌지시 제시한다. 결코 교조적인 태도나 대사 없는 <딸에 대하여="">는 그렇게 여성, 특히 각자의 세대를 지나온 여성을 통해 다각도로 세상을 담는다.

<딸에 대하여="">

주요 인물이 모두 여성이긴 하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여성'만'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마와 딸이란 관계를 잠시 제거한다면 제희-엄마-그린은 세대로도 접근할 수 있고, 엄마와 딸의 환경은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고충을 내비치기도 한다. 엄마와 그린/레인은 사회가 규정하는 '평범' 혹은 '정상'의 범주를 돌아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딸에 대하여="">는 부모-자녀 관계, 세대, 동성애, 비정규직 등 사회적 소수자와 소외 계층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담론을 담고 있다. 이미랑 감독은 “저희도 언젠가 노약자가 될 거고 지금 비정규직이신 분도 있으실 것”이라며 “소수자와 약자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보편적으로 우리들에 대한 영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가 제 나름의 답변을 찾고 싶었다”고 <딸에 대하여="">를 연출한 마음을 전했다.


완벽한 화합의 네 배우

<딸에 대하여=""> 엄마 역 오민애

<딸에 대하여=""> 제희 역 허진

여기에 화룡점정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오민애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수상이 증명하듯 영화 전체를 이끌며 엄마가 겪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복합적인 얼굴을 표현한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함, 세상에 누구 하나 아껴주지 않는 제희에게의 투영, 일평생 살아오면서 조금씩 쌓인 감정들은 오민애의 얼굴과 몸짓에 녹아들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촬영 당시 다섯 작품을 촬영 중이었다는 오민애는 “(<딸에 대하여="">의) 엄마는 자기 감정을 표현 안 하는 편이라 답답증이 걸리는 것 같았다. 감독님한테 엄살도 부렸다”고 그때의 고충을 떠올렸다가 “감독님께서 다 용서할 수 있어 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 나왔다. 고생한 만큼 비례되는 기쁨”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선배라 할 수 있는 허진 배우가 보여주는 제희의 연기도 처연하기 그지 없다.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평생 타인을 돌본 탓에 가족이 없는 그가 치매로 세상 밖으로 밀려날 때, 우리는 그에게서 각자 노년을 맞이한 가족의 초상을 떠올리게 된다. 허진은 “독하다는 감독님들과 많이 해봤지만 (이미랑 감독은)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라면서도 “지독하지만 천사 같은 감독님”이라고 이미랑 감독과의 작업을 회상했다. 함께 한 하윤경은 허진 배우가 “너무 재밌게 해주시고 귀여워해주시고 제 드라마 챙겨봤다고 먼저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허진 배우의 다정함을 밝혔다.

<딸에 대하여=""> 그린 역 임세미

<딸에 대하여=""> 레인 역 하윤경

각각 그린, 레인을 연기한 젊은 두 배우 임세미와 하윤경 또한 현실적인 청년들의 모습으로 영화를 채웠다. 임세미는 그린을 연기하며 진취적이면서도 엄마와의 관계에선 서툴기만 한 딸의 모습으로 두 사람의 기묘한 거리감을 드러냈다. 레인을 연기한 하윤경은 엄마 못지않게 감정 표현이 적지만 캐릭터의 깊은 속내와 성숙한 성격을 담아냈다. 두 사람 다 쉽지 않은 캐릭터였음에도 <딸에 대하여="">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임세미는 “그린이의 삶으로 또 다른 소수들이 보였다”며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더 강해졌다”고 <딸에 대하여="">가 넓혀준 세상을 설명했고, 하윤경은 “표현을 줄이고 절제하는 부분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 매력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며 출연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난 <딸에 대하여="">는 이미 관객들이 인정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랑 감독의 말에 따르면 영화제 상영 이후 GV 현장에서 “부모님 계신 요양병원에 전화해봐야겠다” “엄마와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말을 듣곤 했단다. 또 ‘아들과 함께 보러 와서 질문을 하신 분’이 있었다며 그에겐 ‘아들에 대하여’였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감독 스스로도 “(영화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는 관계”라고 느꼈다는 <딸에 대하여="">는 오는 9월 4일 개봉한다.